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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록

가설보다 «채점표»를 먼저 적어 봤습니다

가설만 적어두면 저녁에 유리한 쪽으로 읽게 됩니다. 개장 전에 판정 기준을 박아두니 «방향은 맞고 폭은 안 왔다»가 그냥 나왔습니다.

저는 아침에 가설을 적어두는 습관이 있습니다. "오늘은 이럴 것 같다" 를 장 열기 전에 적어두면, 저녁에 그걸 보면서 복기할 수 있으니까요.

그런데 얼마 전에 그게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.

저녁에 그 메모를 다시 읽으면, 저는 맞은 부분을 먼저 봅니다. 방향이 맞았으면 «맞았다» 고 적고, 폭이 안 왔으면 «그래도 방향은 맞았지» 라고 적습니다. 반대로 방향이 틀렸으면 "애초에 확신은 없었다" 는 문장을 찾아냅니다. 그 문장은 대개 실제로 거기 적혀 있습니다.

가설은 적혀 있는데, 무엇을 «맞았다» 고 부를지가 안 적혀 있어서 생기는 일이었습니다.

그래서 9월 8일에는 하나를 더 적어봤습니다. 채점표입니다.


1. 개장 35분 전에 적은 것

그날 아침에 제가 본 것은 이런 그림이었습니다. 지수가 7,700 이라는 자리 바로 위에서 열릴 참이었고, 그 자리는 마침 감마 플립(딜러 헷지 방향이 뒤집히는 지점)과 겹쳐 있었습니다.

📌 여기서 말하는 감마 플립은 «그날 만기(0DTE)» 기준입니다. 같은 지표라도 만기를 전부 합쳐서 재면 다른 값이 나옵니다. 저도 이 둘을 섞어 읽은 적이 있어서 적어 둡니다 —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 먼저 정하지 않으면, 같은 이름의 선이 두 개가 됩니다.

가설 자체는 단순했습니다.

7,700 을 지지하면   → 와리가리 (레인지)
7,700 을 잃으면     → 7,625 까지 각오

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습니다. 다른 점은 그 아래에 이걸 같이 적었다는 것입니다.

#무엇을 볼 것인가어떻게 판정할 것인가
17,700 지지 여부종가 기준 · 장중 저가 기준 둘 다 기록
27,625 도달장중 저가 ≤ 7,625 이면 도달
3와리가리였나당일 레인지 ÷ 그날의 예상 변동폭. 1.0 미만이면 와리가리
4다우 60일선거기까지 갔나
5나스닥 5개월선눌림이 유지됐나

그리고 판정 규칙도 미리 적었습니다.

  • 적중: 7,700 이탈 그리고 7,625 도달
  • 부분 적중: 방향은 맞았으나 폭이 안 옴
  • 기각: 7,700 을 지켰는데 레인지가 예상폭을 넘어 확대됨

마지막 줄이 핵심입니다. "사후에 기준을 고치지 않는다" 를 문서 맨 위에 적어뒀습니다. 저녁의 저에게 남기는 메모입니다.


2. 저녁에 칸을 채웠습니다

그날 지수는 이렇게 움직였습니다.

시가   7,717.81
고가   7,717.81      ← 시가와 같습니다. 시가 위를 한 번도 못 밟았습니다
저가   7,666.99
종가   7,673.52
#항목결과
17,700 지지🔴 이탈. 개장 7분 만에 잃고 되찾지 못했습니다
27,625 도달⚪ 미도달. 저가가 41.99pt 남기고 멈췄습니다
3와리가리🟢 레인지 50.82 ÷ 예상폭 58.4 = 0.87
4다우 60일선🎯 장중 저가가 그 선을 찍고 종가는 위에서 마감
5나스닥 5개월선🎯 아래에 눌린 채 유지

사전에 정의한 «부분 적중» 칸에 그냥 들어갔습니다. 방향은 맞고, 폭은 안 왔습니다.

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"제 가설이 반쯤 맞았다" 가 아닙니다. 저녁에 제가 판단할 게 없었다는 것입니다. 칸을 채우니까 결론이 이미 거기 있었습니다.


3. 재미있었던 것 — 두 칸이 «동시에» 성립했습니다

표를 보고 나서야 눈에 들어온 게 있습니다.

#1 은 「이탈」인데 #3 은 「와리가리」입니다. 보통은 둘 중 하나입니다. 뚫고 내려가는 날은 레인지가 커지고, 와리가리하는 날은 선을 안 뚫습니다.

그날은 선은 잃었는데 레인지는 억제됐습니다.

7,700 을 잃었다        → 방향은 아래
그런데 예상폭의 0.87   → 폭은 안 왔다

저는 이걸 「방향은 맞고 폭이 안 오는 날」 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. 그날 시장의 성격을 한 줄로 말하면 그겁니다.

그리고 같은 결론이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나왔습니다

옵션 가격은 「어디까지 가느냐」에 값을 매깁니다. 방향만 맞아서는 값이 붙지 않는 구조가 있습니다.

그날 7,625 라는 폭을 전제로 값이 매겨진 옵션들은 값이 붙지 않았습니다. 지수가 그 방향으로 갔는데도 그렇습니다. 41.99pt 가 모자랐기 때문입니다.

채점표가 «부분 적중» 이라고 말한 것과, 옵션 가격이 말한 것이 같았습니다. 두 개가 서로를 모르고 같은 답을 냈습니다.


4. 경계선에 걸린 칸 — 여기가 채점표가 필요한 진짜 이유입니다

#3 을 다시 보겠습니다.

그날의 «예상 변동폭» 은 VIX1D 라는 지표로 계산합니다. 하루짜리 변동성 지수입니다. 저는 아침에 직전 거래일(9월 4일) 종가 12.03 으로 계산했고, 그래서 예상폭이 ±58.4pt 로 나왔습니다.

그런데 그날(9월 8일) VIX1D 종가는 10.43 이었습니다. 아침에 쓴 값은 «나흘 전» 종가였고, 그날 자신의 값은 장이 끝나야 나옵니다.

아침 값 12.03 (9/4 종가) → 예상폭 ±58.4  →  50.82 ÷ 58.4 = 0.87   → 와리가리 🟢
종가 값 10.43 (9/8 종가) → 예상폭 ±50.6  →  50.82 ÷ 50.6 = 1.00   → 경계선 ⚪

판정이 뒤집히는 자리입니다.

저녁에 이걸 발견했을 때, 저는 «더 정확한 값으로 다시 재는 게 맞지 않나»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. 사후 종가가 그날을 더 잘 설명하는 건 사실이니까요.

그런데 그게 정확히 채점표가 막으려던 것이었습니다.

아침에 제가 쓸 수 있었던 값은 12.03 뿐이었습니다. 10.43 은 장이 끝나야 나옵니다. 결과를 보고 나서 재는 자를 바꾸면, 그건 채점이 아니라 해석입니다.

그래서 사전 등록값(58.4)으로 판정하고, 뒤집힐 뻔했다는 사실을 옆에 적어뒀습니다. 판정은 그대로 두고 민감도만 기록으로 남기는 쪽입니다.

📌 이 한 칸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. 채점표는 맞았을 때가 아니라 애매할 때 값을 합니다.


5. 아직 모르겠는 것

그날 «폭이 안 온»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이 하나 있습니다.

옵션 시장에서 풋 쪽으로 자금이 들어오는지 를 보는 지표가 있습니다. 저는 "아래로 크게 가려면 풋 매수가 붙어야 한다" 고 봐 왔습니다. 붙지 않으면 흘러내리기는 해도 선을 못 뚫는다는 쪽입니다.

  • 8월 19일: 풋 쪽 자금이 오히려 빠졌습니다. 그날 저가는 7,700.07 — 라운드 넘버를 0.07포인트 차이로 못 뚫었습니다
  • 9월 8일: 개장 직후에는 풋 매수가 크게 붙었고(그래서 7,700 을 뚫었습니다), 오후에 매도로 돌아섰습니다. 그리고 7,625 까지는 못 갔습니다

두 날이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. 그런데 표본이 두 건입니다.

두 건은 패턴이 아닙니다. 우연히 두 번 맞을 확률은 충분히 높습니다. 저는 이걸 «관찰» 칸에 넣어두고 계속 세는 중입니다. 30건이 되면 그때 다시 보겠습니다. 지금은 이걸 근거로 매매하지 않습니다.


6. 정리하면

제가 바꾼 것은 하나뿐입니다. 가설 아래에 채점표를 한 장 붙였습니다.

전후
가설만 적는다가설 + 무엇을 맞았다고 부를지 를 같이 적는다
저녁에 «해석» 한다저녁에 칸을 채운다
애매하면 유리하게 읽힌다애매하면 사전 등록값으로 판정하고 민감도를 옆에 적는다

표 다섯 줄과 판정 규칙 세 줄이 전부입니다. 가설을 적는 김에 같이 적으면 됩니다. (얼마나 걸리는지 재본 적은 없어서 시간으로는 적지 않겠습니다.)

그리고 이건 트레이딩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. 결과를 보고 나서 기준을 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디서나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.

저는 이 방식으로 아직 며칠밖에 안 해봤습니다. 오래 해보고 다시 적겠습니다.


⚠️ 이 글은 제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정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. 투자 권유가 아니고, 특정 종목·전략을 추천하지 않습니다. 옵션 거래는 원금 전액을 잃을 수 있습니다.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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